[크로아티아-잉글랜드] 스포츠에서 일컫는 '정신력'이 발현된 경기
축구라는 드라마가 가져다 줄 수 있는 아름다움이 묻어난 경기.
어제 경기가 불꽃 튀는 전술대결이 장식한 시리즈이었다면, 오늘 경기는 크로아티아 선수들의 투혼으로 빚어낸 한 편 영화였다.
크로아티아의 이야기는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해는 유고 연방의 국부 티토가 명을 달리한 해. 티토 사후 유고 연방은 분열했고 약 10년에 걸친 내전을 겪었다. 크로아티아는 1992년 독립에 성공했고 1995년에야 아듀트 협정을 끝으로 총칼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인구가 약 450만명에 지나지 않는 작은 나라, 크로아티아는 1998년에야 월드컵에 첫 선을 보였다.
당시 크로아티아의 스타 플레이어이자 주장이었던 즈보니미르 보반은 황금 세대라 불리는 대표팀을 이끌고 월드컵 3위를 차지했다.
보반이 누구인가. 유고 내전이 본격화되기 전, 크로아티아 국민들의 가슴에 민족의식을 일깨운 선수가 아닌가.
1990년 5월 13일, 크로아티아 분리 독립에 대한 2차 투표가 진행되고 얼마 되지 않은 시기, 현재 크로아티아의 수도이자 보반이 주장완장을 차고 있던 디나모 자그레브와 세르비아의 심장, 레드스타 베오그라드 간 경기가 펼쳐졌다.
이 경기에서 레드스타 팬들이 자그레브 팬들에 돌을 투척하고 경기장을 파손하는 등, 당시 크로아티아-세르비아 간 정치적 대립으로 경기장 분위기는 폭풍전야와 같았다. 아니, 흡사 총성 없는 전쟁이었다.
하지만 경찰들은 반격에 나선 자그레브 팬들을 일방적으로 진압했고, 이에 분노한 보반은 경찰에게 발차기를 해버린다.
이후 9개월의 출장 정지와 1990년 월드컵을 날리는, 선수 생활에 있어 큰 타격을 입은 보반.
하지만 그는 크로아티아인들의 성원을 한 몸에 안는 선수가 됐고, 전국구적인 우상으로 발돋움했다. 그리고 크로아티아라는 이름으로 나선 첫 메이저 대회인 유로96에서 8강을, 1998년 월드컵에선 3위를 차지하며 자신의 이름을 전 유럽에 알린다.
이번 월드컵 크로아티아와 마찬가지로, 크로아티아는 보반을 위시로 다보르 슈케르, 로베르토 프로스네츠키 등 실력도 실력이지만 엄청난 투혼과 정신력으로 무장한 팀이었다.
그리고 그 모습을 20년이 지난 2018년에 후배들이 다시 일깨워줬다. 월드컵 역사에 크로아티아라는 이름이 등장한지 불과 20년 밖에 되지 않았지만, 유고 연방 시절에도 해내지 못 했던 월드컵 결승이란 대업을 이뤘다.
오늘 경기에서 크로아티아는 이미 두 경기 연속 승부차기, 120분의 연장 혈투를 치르고 왔고, 전 경기에서 만주키치, 브르살리코, 수바시치가 부상으로 그라운드에 쓰러졌지만 다시 그라운드 위에 섰다.
몸은 무거웠고, 전반 이른 시간에 잉글랜드에 선제골을 내줬다. 완전히 넉다운 됐다고 보일 만큼 무력했던 크로아티아.
하지만 없는 힘도 쥐어짜낸다는 말이 어울리게, 레비치와 페리시치를 필두로 크로아티아는 미친듯이 뛰기 시작했다.
크로아티아 선수단에게 어떠한 메시지가 전달된 것인지, 잠잠했던 모드리치도 잠에서 깨어났고 만주키치도 투지를 불태웠다. 패기로 무장한 젊은 팀, 잉글랜드가 흔들리기 시작했다.
크로아티아는 전반전 내내 상대 진영 깊은 곳까지 파고들지 못한 채 , 잉글랜드 진영 3/4 지점에서 얼리크로스만 남발했다. 잘 정돈된 잉글랜드 수비진을 상대로 유의미한 공격은 없었다.
허나 브르살리코의 크로스에 페리시치가 몸을 던져 발을 갖다댔고, 워커가 헤딩으로 걷어내기 전에 공에 먼저 닿아 골망을 갈랐다.
후반 20분부터는 완벽히 크로아티아의 흐름. 페리시치는 오늘도 골대의 불운을 맞이하는 아픔을 겪었다. 그럼에도 잉글랜드 선수들을 죽일듯이 압박한 레비치와 적극적인 스위칭을 펼치며 잉글랜드 측면을 괴롭혔다.
페리시치는 188cm에 달하는 장신인데다, 인터 밀란에서도 많이 뛰는 윙어로 정평이 나있다. 수비 가담도 매우 활발했고 헤딩 경합에서도 잉글랜드 선수들을 압도했다.
모드리치도 다시 지난 경기들과 같은 모습으로 상대 3선을 후벼파기 시작했고, 라키티치는 여전히 기복 없는 플레이로 중원을 지배했다. 브로조비치도 수비형 미드필더로 빈 틈 없는 경기 운영을 보여줬다. 잉글랜드가 동점골을 허용한 뒤부터는 공격하는 방법을 잃어버린듯 했으니.
'실수가 잦다, 쉽게 흥분한다, 높이에서 안된다'는 평가를 받던 크로아티아 수비진은 잉글랜드의 빠른 공격수들에게도 흔들리지 않았고 실수 없이 페널티 박스를 지켰다.
결국 경기는 연장으로 흐르고 크로아티아 선수들은 세 경기 연속 연장 승부를 치르게 됐다. 쉽게 말해, 한 번도 연장을 치르지 않은 결승 상대 프랑스와 비교하면 90분을 더 뛴 셈.
그럼에도 달리치 감독은 한 명도 교체하지 않고 90분을 뛴 선수들을 연장전에도 내보냈다. 그가 플레이오프를 앞두고 선임된 초짜감독이라서? 넣을 선수가 없어서?
그는 피치 위 11명의 선수들이 발산하는 무형의 에너지를 믿었던게 아닐까.
크로아티아는 계속해서 수비와 골키퍼 사이에 낮은 크로스를 보냈고, 워커가 걷어낸 볼이 높이 뜨자 동점골의 주인공 페리시치가 헤딩 경합에서 따낸 볼이 만주키치에 향해 결승골을 터뜨렸다.
이는 결코 우연이 아닌 것이, 페리시치는 대니 로즈나 트리피어를 상대론 높이 싸움에서 우위를 점할 수 있는 선수고, 이는 유벤투스에서 만주키치가 왼쪽 윙어로 나서며 '타겟형 윙어'로 뛰며 보여준 전술과도 무관하지 않다.
이미 진 듯이 경기하던 크로아티아가 갑작스럽게 투혼을 불사른 것은 무슨 연유였을까. 흔히 우리가 이야기하는 '정신력'은 경기장에서 보여주는 투지, 쉽게 포기하지 않는 끈기, 불리한 상황에서도 불가능을 가능케 하는 무형의 에너지를 뜻한다.
하지만 서양에서 정신력이라 함은, 어떠한 상황 속에서도 평정심과 집중력을 잃지 않고 자신의 리듬을 유지하는 것을 뜻한다고 한다.
오늘의 크로아티아는 이 두 가지가 잘 어우러진듯한 팀이었다. 레비치와 페리시치가 한국에서 이야기하는 정신력을 보여, 만주키치, 모드리치 등을 덩달아 신나게 했다면, 평정심을 잃지 않고 훌륭한 경기를 펼쳐준 라키티치와 브로조비치, 크로아티아의 수비진들은 서양적인 정신력을 그대로 발현했다고 할 수 있다.
아이러니하게도, 이러한 '정신력'을 강조하는 팀은 두 팀이다.
동양적인 정신력, 투지를 강조하는 대표적인 유럽 팀은 바로 잉글랜드이며, 서양에서 의미하는 정신력을 상징하는 팀은 전차군단 독일이다.
잉글랜드의 투지를 대표하는 인물은 1990년 잉글랜드가 마지막으로 4강에 올랐던 당시 잉글랜드를 이끌던 데이비드 플랏이 있고, 1990년 이탈리아 월드컵을 준비하던 와중, 1989년 스웨덴전에서 피투성이가 된 테리 부처가 그러했다.
오늘 잉글랜드 선수들에게는 이러한 투지를 찾기 어려웠다.
월드컵 골든슈가 유력한 해리 케인은 경기장에서 지워졌으며, 잉글랜드가 자랑하는 젊은 미드필더, 델레 알리와 제시 린가드도 크로아티아 중원 앞에 속수무책이었다.
풋내기 센터백 존 스톤스는 오늘도 만주키치를 놓치는 실수를 빚으며 결승골을 지켜봤고, 전문 센터백이 아니었던 카일 워커도 안일한 판단으로 페리시치에게 동점골을 허락했다. 맥과이어는 세트피스 공격에서나 그 존재감을 보일 뿐이었다.
맨 오브 더 매치에 선정된 페리시치. 1골 1도움과 골대를 강타하는 슛까지. 표면적으로도 페리시치가 오늘 경기 최고의 선수가 되기엔 충분하다.
하지만 많은 이들의 마음을 흔든 것은 쓰러져가는 크로아티아를 살린, 페리시치가 한 발 더 뛰며 불사른 투혼이 아니었을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