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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TFT] 역사는 어떻게 유고슬라비아에 패배감을 안겼는가 HOW HISTORY DEFEATED A GREAT ERA OF YUGOSLAV NATIONAL TEAM TALENT [These Football Times = Onur Bilgic] 몇몇 팀들은 메이저 대회 토너먼트에 그들의 족적을 남겼다. 다만 승리는 다른 팀의 몫으로 넘겨둔 채로. 1954년 헝가리와 1974년 네덜란드는 월드컵 결승에 올랐으나 모두 서독에 패했다. 1982년, 지코와 소크라테스가 있던 역사상 최고의 브라질 대표팀은 파올로 로시의 이탈리아에 깨지지 않았는가? 유고슬라비아 역시 이러한 불운의 팀 반열에 놓여야 할지도 모르겠다. 유고 내전이 없었더라면, 유로 92와 1990년대 전체에 걸쳐 그들의 발자취를 남길 수 ..

[TFT] 전에 없는 원더팀, 1990년대 유고슬라비아 YUGOSLAVIA IN THE 1990S: THE WONDER-TEAM THAT NEVER WAS [These Football Times = Jonathon Aspey] 1991년, 레드스타 베오그라드는 데얀 사비체비치, 로베르토 프로시네츠키, 다르코 판체프 등의 활약에 힘입어 유러피언 컵 트로피를 들어 올렸다. 장 피에르 파팽, 아베디 펠레, 크리스 와들 같은 스타들이 가득한 마르세유를 상대로 이룬 결과였기에 더 놀라웠다. 발칸반도에선 그 시대가 황금기로 여겨진다. 비록 그 시기 유고슬라비아는 민족적, 종교적 갈등으로 분열되고 있었지만 말이다. 1980년 그 갈등을 지탱하는 존재로 여겨졌던 요시프 브로즈 티토가 사망했고, 199..

축구라는 드라마가 가져다 줄 수 있는 아름다움이 묻어난 경기. 어제 경기가 불꽃 튀는 전술대결이 장식한 시리즈이었다면, 오늘 경기는 크로아티아 선수들의 투혼으로 빚어낸 한 편 영화였다. 크로아티아의 이야기는 1980년으로 거슬러 올라간다. 이 해는 유고 연방의 국부 티토가 명을 달리한 해. 티토 사후 유고 연방은 분열했고 약 10년에 걸친 내전을 겪었다. 크로아티아는 1992년 독립에 성공했고 1995년에야 아듀트 협정을 끝으로 총칼의 위협에서 자유로울 수 있었다. 인구가 약 450만명에 지나지 않는 작은 나라, 크로아티아는 1998년에야 월드컵에 첫 선을 보였다. 당시 크로아티아의 스타 플레이어이자 주장이었던 즈보니미르 보반은 황금 세대라 불리는 대표팀을 이끌고 월드컵 3위를 차지했다. 보반이 누구인가..